진시황의 분서갱유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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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 5. 12. 21:49
진시황의 분서갱유 유래
분서갱유(焚書坑儒)는 진시황 때 책을 불사르고 유생들을 생매장한 사건을 말한다. 진나라는 천하통일 후 과거의 봉건제를 폐지하고 중앙집권제인 군현제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이 군현제는 진나라의 천하통일에 큰 공을 세운 승상 이사의 작품이었다.
그러나 순우월이라는 자가 과거의 봉건제를 주장하며 군현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군현제로는 황실를 무궁히 보전하기 어려우니 황실의 보전을 위해 봉건제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공신들과 황실의 황족들을 제후로 삼아 땅을 나누어주어 다스리게 하고 황실을 보호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승상 이사가 반박하고 나섰다. 군현제는 법령이 한 곳에서 발령되어 천하가 안정되지만, 봉건제는 제후들이 전쟁을 자주 일으켜 천하의 질서가 잡힐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옛날의 책으로 배우는 선비들이 군현제를 비방하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꼭 필용한 책을 제외한 모든 책, 즉 의약서, 복서, 농서 그리고 진나라 역사서 외 모든 책을 불태워야 한다고 했다. 이에 진시황은 이사의 말에 따라 모든 책을 불사르니 이를 분서(焚書)라 한다.
갱유(坑儒)는 유생들을 생매장한 것인데 그 연유가 진시황의 불로장생약을 구하는 데에 있다. 노생, 후생이 불로장생약을 구하려 떠났다. 그러나 불로장생약은 구할 수가 없었고 죽임을 당할 것이 두려워 도망쳐버렸다. 그러면서 황제의 권세욕과 교만으로 약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황제를 비방했다.
이에 많은 자들이 동조하면서 황제를 비방하였고, 황제를 비방한 자들을 잡아 문초를 해보니 대부분 유생들이었다. 진시황은 이들을 생으로 매장해버리니 그 수가 460명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