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에 생각나는 것들, 동지팥죽, 황진이, 가장 긴 밤
- 일상/일상이야기
- 2019. 12. 22. 19:03
오늘 동짓날, 동지팥죽을 먹었다.
우리는 해마다 동짓날이면 팥죽을 쑨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는 것은 풍습도 풍속이지만 팥죽 자체가 맛도 있고 또한 이런 기회가 아니면 굳이 팥죽을 쑤어먹을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동지팥죽은 액운을 쫓는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여러모로 동지팥죽은 직접 쑤어먹을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동지팥죽이 악귀를 쫓는다는 얘기는 현시대에서는 미신으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미신과 풍습의 관계를 굳이 인위적으로 구분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풍속 중에 미신에서 기인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지금은 거의 없어진 일이기도 하지만, 옛날에 우리 어머니들은 매일 아침에 밥을 하기 전에 부뚜막에 정화수라고 맑은 물을 떠놓고 가족의 행복을 기원한 후 밥을 짓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이것처럼 순수하고 정성 어린 기도가 또 어디 있을까 싶기도 하다.
황진이의 시 '동짓달 기나긴 밤을'은 동짓날에 딱 어울리기도 해서 절로 생각나는 시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 니불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 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그리움에 관한 많은 표현들은 때로 지나치게 애걸스러워 구차하게 느껴지기도 한데,
님을 향한 그리움을 이처럼 담백하면서도 애틋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음미할수록 감칠맛이 돋는 시심이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어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짓날.
12월이 오고 겨울이 오면 나는 내심 동짓날을 은근히 기다린다.
내가 동짓날을 기다리는 이유에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단순히 해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12월에는 오후 5시쯤 되면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오후 6시도 못 돼서 해가 지는 것 같다. 점심을 먹고 나면 몇 시간 지나지도 않은 것 같은데 하루가 다 간다. 여름철 해가 긴 때는 오후 8시가 되어도 밖이 훤한데 겨울과 여름의 일조차가 매우 심하다.
그렇다고 일조 시간이 짧다고 해서 뭐 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며, 낮의 길이가 길다고 해서 더 많은 일을 한다거나 별난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낮 시간이 짧으면 왠지 하루가 짧다는 느낌이 들고 그게 아쉽게 느껴진다.
사실 난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겨울이라는 계절은 볼 것이 별로 없어 때문이다. 간혹 함박눈이라도 내리면 축복을 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 기회가 겨울 내내 한 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고, 어느 겨울엔 아예 눈이 내리지 않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올 겨울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 눈이 내리지 않고 있다. 함박눈은 고사하고 아예 아무 눈도 내리지 않고 있다. 정말 사막한 겨울이다. 이런 겨울은 동물처럼 동굴에 갇혀 동면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이제 며칠이면 한 해가 간다. 본격적으로 한 해를 보낼 준비와 또한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나는 해가 바뀜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내가 내 나이를 세듯 나름 기준이 되는 날이라 이에 걸맞게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어째튼 함박눈이라도 펑펑 쏟아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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